전쟁은 형식적인 군사 전투 규칙에 의해 일어나는데, 규칙에는 국제적인 것도 있지만, 내부적인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여러 해 동안 세상에서 비극적인 사건들은 “단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변명으로 정당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명령을 무시하고, 그들만의 자유 의지에 충실한 적도 있습니다.

그 결과, 결정적인 군사적 승리가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5. 코펜하겐 전투 (나폴레옹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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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탁월한 선장인 호라티오 넬슨은 1801년 덴마크와의 결정적인 전투에 참여합니다.

그런데 그의 지휘관인 하이드 파커 경은 넬슨과 그의 경량군함을 적들 근처로 보냅니다. 물이 너무 얇아서 큰 배들은 접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그러다 상황이 악화되자 파커 경은 넬슨과 그의 군함들을 전투에서 후퇴하라고 명령합니다.

하지만 넬슨은 일부러 신호를 무시하고 깃발신호를 보내는 대위에게 말합니다. “나는 애꾸눈이다. 어쩔 때는 명령을 못 볼 수도 있는 권리가 있다.”

이 전투를 통해 관용구적인 표현이 생기는데 “모르쇠를 잡다 (분명한 걸 무시한다)”라는 말이 호라티오 넬슨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명령을 어길 때 말이죠.

 

4. 타넨베르크 전투 (제 1차 세계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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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제국군대는 침략하는 러시아 군대를 물리쳤는데, 이 승리는 헤르만 폰 프랑수아라는 장군이 명령들을 여러 번 무시하면서 수천명의 부하들 목숨을 살렸기 때문입니다.

그가 명령을 무시한 한 예는 공격명령이 떨어졌지만 화력 지원없이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다고 판단했던 적입니다.

그의 결정은 정보에 의한 것이었는데, 러시아 군대가 아직은 공격하려고 몰려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폰 프랑수아는 대기하면서 적절하게 준비를 했는데, 이 결정이야말로 러시아 군대가 전진하는 걸 막는데 큰 몫을 했습니다.

나중에도 그는 또 다른 명령을 무시하는데, 덕분에 러시아 군대의 큰 부분을 함정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3. 시실리전 (제 2 차 세계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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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군은 북아프리카에서 독일군을 무찌르고 시실리아를 침략하려고 계획했습니다.

그 당시, 미 육군은 조지 패턴 장군의 지휘하에 있었습니다.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걸로 유명했죠.

그런데 힘겨운 지형을 지나서 서쪽의 길을 장악하는 명령을 따르지 않고, 대신 영국군이 잡으려고 했던 팔레르모를 포획했습니다.

그 이후 패턴 장군은 영국군 지휘관인 알렉산더에게 ‘도시를 탈환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받습니다.

패턴 장군은 “그렇다면 팔레르모를 돌려달라는 거냐고 물어보라”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면서 ‘메씨나’라는 도시를 영국군의 몫까지 탈환해버리고 말았습니다.

2. 뉴올리언스 전투 (미국 남북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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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올리언스 전투의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1864년 모빌 만의 전투에서 미해군을 이끌는 중, 데이비드 파라굿의 명언으로 “그 놈의 어뢰들”이 꼽힙니다.

뉴올리언스에서 파라굿은 미시시피강에 들어가 도시를 방어를 허물고, 탈환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하지만 파라굿은 해군의 장비가 효과적일 것이 아니라 판단하고, 방어를 뚫기 힘들거라 생각하고 명령을 무시합니다.

대신 그는 육군을 방어벽을 피해 이동시켰는데, 그 당시 상황이 너무 어려워 명령에 불복종한 것입니다.

파라굿은 미해군 최초의 제독에 임명되는데 그의 판단이 옳았기 때문입니다.

1. 세인트 빈센트 전투 (나폴레옹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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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전쟁은 흥미로운 전쟁인데 호라티오 넬슨이 여러 번 명령을 불복종해서 승리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가장 좋은 예입니다.

존 저비스 제독은 영국함대 지휘관으로 스페인함대와 교전하기 위해 영국함대를 일자로 세웁니다.

육군 전투에서는 전투 정렬을 일부러 깨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호라티오 넬슨은 예외로서 전투 정렬에서 빠져나와 스페인함대의 탈출을 차단해버렸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넬슨은 영국에게 그토록 필요했던 승리를 가져왔습니다.